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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사회적 대화 광장 | [특집] 상생형 지역일자리 성과와 과제 상생형 일자리, 탄탄한 거버넌스 구축해야 지속가능 노사민정 역할에 대해 “지난하게 고민하는 시간 필요”

  • 조회수
    288
  • 등록일
    2022-05-01

| 지역 사회적 대화 광장 |

[특집] 상생형 지역일자리 성과와 과제 상생형 일자리, 탄탄한 거버넌스 구축해야 지속가능 노사민정 역할에 대해 “지난하게 고민하는 시간 필요”

정다솜 <참여와혁신> 기자



‘밀라노 프로젝트’는 대구를 이탈리아 밀라노처럼 국제적인 섬유·패션도시로 키우겠다며 추진된 국책 사업이다. 1999년부터 10년간 예산 8,700여억 원이 투입됐지만, 실패로 결론났다. 대구 섬유산업의 활력은 오히려 떨어졌다. 섬유업체와 노동자 수는 이전보다 감소했고, 섬유 수출

액도 줄었다. 대구시가 사업을 위탁한 지역 내 이른바 ‘힘 센’ 단체들은 사업비 횡령·유용 등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하향식(Top-down) 산업·일자리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밀라노 프로젝트 백서’를 발간한 대구경실련은 “사업 자체의 타당성과 무관하게 제왕적 지방자치단체장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린 사람들이 전략산업 선정을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밀라노 프로젝트뿐 아니라 지역의 현실과 동떨어진, 사업의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하향식 일자리 정책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따라 지역일자리 사업의 핵심은 분권화 수준이며 지역 주체로부터 상향식(Bottom-up) 일자리 모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이러한 인식 위에 지역 노사민정 간 대화와 협력을 기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시작됐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지역 주도 상향식 일자리 모델 2019년 광주에서 최초로 상생협약이 체결된 이후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전국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현재까지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선정된 지역은 총 6곳이다. 광주형 일자리 등 6곳이 추가된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지역에 활력이 되고 있다. 박병규 광주형일자리연구원 이사장은 “광
주형 일자리 이야기를 꺼낸 2014년부터 3년은 무모하다는 등 비판을 많이 들었다”며 “이젠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생산하는 캐스퍼가 대박나면서 오히려 지역은 확신에 차 있다.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가 준비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지역 주체들 간 대화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데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의미가 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선정되려면 지역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인 상생협약이 필수 조건이다. 상생 모델은 ▲노사 상생 모델(광주, 군산) ▲지역민 상생 모델(신안) ▲기업 간 상생 모델(부산) 등이 있다. 또한 상생협약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동의나 협의가 필요하고, 사업 선정 시 협의회에서 내실 있는 소통이 이뤄졌는지 평가된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지역 주체들 간 협력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고무적”이라며 “사회적 대화의 경험이 축적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 사업은 큰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상생, 수단이 아닌 목적돼야

과제도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2021 상생형 지역 일자리 포럼’에서 사업 선정을 위해 지역에서 상생이라는 가치를 예산 등 인센티브 확보의 수단으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업이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지역투자와 지역투자보조금, 규제 개선 등 인센티브 제공이라는 기존 인식의 원리가 남아 있다”며 “그러다 보니 상생이라는 가치가 인센티브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도 일부 있다. 자칫하면 목적과 수단이 전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독자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밝혔다. 그는 “상생은 단지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다. 해당 일자리를 둘러싼 당사자들 간 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핵심 목적이 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 국토균형발전특별법을 넘어선 별도의 법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생의 가치를 수단으로 치부할 경우 지자체가 지역 거버넌스를 ‘패싱’하는 일이 발생한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18년 6월 현대차는 광주시에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다. 이후 광주시와 현대차 간 투자 협상 진행 과정에서 노동이 배제되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삐걱댔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현대차 투자 협상 과정에서 노동계를 배제하려는 행태에 힘들었다. 상황을 알지 못하게 하고, 노동계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으니 협조하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원탁회의 등 사회적 대화의 공간이 확보되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지역 노사민정의 역할

지난하게 고민하는 시간 필요

‘상생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지속가능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을 위해 중요한 과제는 지역 거버넌스 구축이다. 채준호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일자리를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구축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며 “거버넌스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일자리 모델을 개발하고 상생협약을 체결해 사업 선정 이후 상생요소를 유지하는 일련의 과정이 잘 진행될 수 있지만, 여전히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험이 일천하기에 여러 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이제 4년차인 만큼 지역 거버넌스가 사업의 중심이 되기
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중앙정부, 지방정부 주도성이 높은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긴 하다”며 “거버넌스가 마땅히 없는 곳들은 일단 지방정부라도 중앙정부와 협력해서 해나간다. 이 사업을 통해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새롭게 미션을 부여받아 가동하거나 새로 협의회가 생기는 곳들이 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거버넌스로 거듭나기까진 갈 길이 멀기에, 사업 초기엔 불가피하게 지방정부가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지방정부의 역할을 일정하게 부분화시키고, 다른 민간의 주체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명확한 상을 그리며 거버넌스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현재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활성화되는 단계까진 아니지만,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 이 사업이 의미 있는 숙의 과제를 던져놨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고현주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도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초기 단계니까 아직까진 컨설팅 기관 중심으로 간다고 본다. 컨설팅 사업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며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서 지역 노사민정이 어떤 역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지난하게 고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사가 중심이 되려면 지난하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버넌스 구축, 어떻게?

지역에서 노사민정이 지난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 고용·노동 거버넌스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다. 지난해 기준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설치된 지자체는 전국 243곳 중 163곳(약 67%)이다. 이중 사무국이 설치된 지자체는 47곳이다.


20여 년간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협의회는 지역 정책협의 틀로서 사회적 대화기
구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한식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적 대화〉(통권2호·2018) 기고에서 “외형상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지자체의 대표적 지역고용노동 거버넌스다. 하지만 대체로 지역 수준 사회적 대화 기능을 결여하고 있으며, 실질적 사회적 대화기능을 추진할 만한 체계를 갖추고 있지도 않다”며 “따라서 대부분 지역 노사민정의 대표적 참여에 의한 관련 정책협의 틀로서 사회적 대화기구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배경으로는 지역 주체 역량 부족, 형식적인 운영, 중앙 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 예산 부족 등의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왔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이호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협의회의 위상과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호근 교수는 “형식상 고용·노동 핵심 거버넌스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부처 내, 부처 간, 중앙과 지역, 노사, 노노 간 복잡한 관계 속에 분할·방치되고 있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혁신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거버넌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사협력 지원 차원을 넘어 지역 고용·노동의 새로운 거버넌스로 지역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들이 지역 산업과 노동시장 활성화의 핵심적 주체로서 그 위상과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협의회의 위상과 역할 재정립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제도적으로 견인돼 양적으로 성장했다. 이런 배경 탓에 부천처럼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자발적으로 진화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우선 지역마다 다른 조례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식이 아닌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호근 교수도 “협의회의 실질적 운영 방향과 방안을 법과 관련 기구운영에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며 “그리고 핵심적인 지역 협의체로서 조직적 기반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지역의 우수한 관련 인재를 확보해 양성하고, 독립적인 재정 지원의 근거를 보장하는 방안으로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의회의 개편 방향은 예산을 받기 위한 사업에 매몰되지 않고 협의체 활동을 우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호근 교수는 조언했다. 그는 “노사민정협의회의 ‘사업’과 ‘운영’의 형식적 추구를 지양하고, 지역의 명실상부한 핵심 정책협의체로서 그 기본을 확고히 해 상시적인 정책협의체로서 그 ‘회의체 활동’을 안정적으로 최우선 지원토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업의 주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전 부천노총 의장)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네트워크 강화만 제대로 해도 예산 지원이 돼야 한다. 부천이 10여 년간 쌓아왔던 네트워크 강화 과정이 생략된 채로 바로 성과 사업으로 넘어간 지역은 지자체장 교체 등 여러 변수에 의해 협의회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사업 성과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으니,


차라리 경사노위가 사업을 주도했으면 좋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2007년 경사노위법에 예산 지원 근거가 마련됐고, 2008년부터는 고용노동부로 지원 사업이 이관됐다.


다만 고현주 사무국장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성격상 경사노위가 사업을 주관하는 건 맞다고 보는데, 실제로 경사노위가 전국단위 사업을 어떻게 케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업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이 우선 고민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